산업안전보건 정책사업 노하우로 후학 양성 나서
변화할 적기···처벌 초점 아닌 예방 위한 제 역할 강조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숭실대학교 안전융합대학원 학과 사무실에서 만난 이준원 교수 /사진=최용구 기자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숭실대학교 안전융합대학원 학과 사무실에서 만난 이준원 교수 /사진=최용구 기자

[환경일보] 최용구 기자 = 지난해 4월29일 이천의 한 물류창고 신축 현장이 화염에 휩싸였다. 휘발성 높은 증기를 뿜는 우레탄폼 작업을 진행하면서 불씨가 튀는 용접까지 벌인게 화근이었다. 전형적인 안전불감증이다. 근로자 38명이 사망하는 등 결과는 총 48명의 사상자를 낸 끔찍한 참사로 돌아왔다. 이미 2018년 태안화력발전소 근로자 고 김용균씨 사고에 더해 가습기살균제 피해까지 “더 이상의 반복적 재해는 안 된다”는 여론에 법과 제도 정비는 급물살을 탔다. ‘중대재해처벌법’이 내년부터 시행을 앞둔 배경이다. 법안은 안전 및 보건 확보 의무를 위반해 중대 산업재해를 발생시킨 사업주 또는 경영책임자는 1년 이상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재해를 예방하자는 취지로 나왔지만 당장 경제단체들 사이에선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 등 경제6단체는 경영책임자의 역할을 실현 가능하게 바꿔달라는 건의서를 지난 4월13일 정부에 제출하기도 했다. 

이준원 숭실대학교 안전보건융합공학과 교수는 “원시적 재해가 반복되고 있던 국내 상황에서 법의 취지가 예방임에 초점을 둬야 한다. 단지 처벌을 위한 목적이 아니다”라며 “사업주들은 시스템과 설비를 개선하고 안전의식을 높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내년 1월27일 본격 도입을 앞두고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 뜨거운 관심 만큼이나 안전한 대한민국으로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까. 산업안전보건 분야 전문가 이 교수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Q. 지난해 이천 참사는 안타까운 사고다. 안전불감증이 심각하단 생각이 드는데 

A. 안전작업 절차만 제대로 지켜졌어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있다. 유증기가 발생하는 우레탄폼 작업과 용접을 동시에 진행한다는 건 상식과 맞지 않는 자살행위와 다름없다. 그 정도로 사업주들의 안전관리 의식이 결여돼 있었다는 방증이다. 

Q. 결국 중대재해처벌법이 통과됐다  

A. 지난해 이천물류창고 참사 외에도 고 김용균씨 사고, 구의역 스크린도어 노동자 사망, 가습기살균제 피해 등 우리 사회의 위험성은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예방의 차원에서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 규모에 1인당 국민소득 3만불 수준인 선진 대열에 있는 나라다. 근로자의 건강과 생명을 뒷전으로 하면서 생기는 원시적 재해는 그야말로 치명적인 리스크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경제단체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다만 당초 법의 취지인 예방의 목적에 주목, 안전경영의 기회로 보는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라는 시각이다. 사진은 지난해 이천 물류창고 참사 현장 점검 당시 /사진출처=경기도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을 앞두고 경제단체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높다. 다만 당초 법의 취지인 예방의 목적에 주목, 안전경영의 기회로 보는 공감대 형성이 우선이라는 시각이다. 사진은 지난해 이천 물류창고 참사 현장 점검 당시 /사진출처=경기도

Q. 안전보건 의무에 대한 사업주(경영진)이 책임이 강화된다

A. 이제는 안전이 최고의 경영이라는 패러다임으로 봐야 한다. 물론 기업의 존재 유무에서 이윤 추구는 핵심이다. 다만, 돈을 벌더라도 안전하게 벌어야 한다는 접근이 필요하다. 중대재해처벌법 도입은 처벌이 먼저가 아니다. 사업주들의 안전의식을 높여 시스템과 설비를 개선해 사고를 예방하도록 하는 것이다.

Q. 산업안전보건법이라는 기존 법망이 있었다. 제 역할을 못한 게 아닌가

A. 그렇다.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총 1200여개 조항이 담긴 방대한 제도적 틀이다. 기계와 전기, 화학물질, 건설, 토목, 보건, 위생 등을 아우르는 구체적 내용이 실려있다. 그렇지만 안 지키면 무용지물이다. 이천 물류창고 참사의 경우도 유해위험방지계획서를 심사 받아 놓고 정작 작업할 때는 무시해서 초래됐다. 심사 내용을 보면 휘발되는 가연성 물질 주변에서 화기 작업을 하면 안 된다고 분명히 명시돼 있는데 말이다.   

Q. 그렇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을 도입한다고 변화를 보장할 수는 없지 않나

A. 무엇보다 CEO의 안전마인드가 가장 중요한 열쇠다. 사업장에 설치된 유해설비 등을 대상으로 안전조치를 이행하고 교육을 실시하는 가장 기본부터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투자가 수반돼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안전을 위한 지출은 아직까지 손실로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기업 스스로가 변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장담할 수 없다. 

국민소득 3만불 나라에서 원시적 반복 재해는 큰 오점

기업의 이윤 추구는 당연, 다만 돈도 안전하게 벌어야

책임자의 실천 전제될 때 중대재해처벌법도 의미 생겨 

Q. 기업 규모에 따른 대응 역량의 차이는 

A. 공공기관의 경우 사정이 낫다. 경영성과와 연계된 평가의 기준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험성평가 이행 여부나 안전보건을 전담할 조직구성원의 숫자 등 안전관리도구가 되는 기준들을 확인한다. 결과는 기획재정부와 공유돼 점수로 이어진다. 문제는 일반 사업장들 역시 이처럼 지속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는 것이다.     

Q. 안전보건을 오랜시간 연구해왔다. 법 시행을 앞두고 최근 동향은 어떤가  

A. 내년 본격 시행까지 채 1년도 남질 않았다. 사업장이나 공공기관 등은 남은 준비기간 법에서 정한 안전보건의 확보 의무 이행을 위해 전문인력 채용이나 위험성평가, 안전보건경영시스템 구축에 신경써야 하는 상황이다. 또한 법무법인들은 별도의 중대재해처벌법 대응 TF(Task Force)를 구성해 향후 법률 수요에 대응하는 움직임이다.

이준원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국면 속에서도 기업 오너에게 '안전'이라는 기본 마인드가 없으면 실질적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사진=최용구 기자
이준원 교수는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국면 속에서도 기업 오너에게 '안전'이라는 기본 마인드가 없으면 실질적 변화는 기대하기 힘들다고 우려했다. /사진=최용구 기자

Q. 학계로의 자문 요청도 과거보다 늘지 않았나

A. 물론이다. 대처방안을 찾아달라며 학교에 설치된 더안전융합연구소 측으로 들어오는 문의 건수만 해도 확연하다. 기업이나 공공기관에서 컨설팅이나 연구용역을 맡기는 비중도 늘고 있다. 자사가 만들고 있는 제품을 더 안전하게 만들고 싶다는 것에서부터 법에 대비해 조직과 인력은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 범위는 다양하다. 허술한 대응으로 자칫 처벌될 수 있다는 부담이 사업자들에게 경각심을 주고 있다.  

Q. 앞으로 활동 계획은

A. 사망사고와 같은 중대재해를 이제는 제대로 예방하고자 법이 나왔다. 보다 많은 조직에 예방 활동이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진다. 특히 학교란 특성상 전문가 양성에 힘을 쏟아야 한다. 올해 3월 숭실대학교에 설립된 ‘안전융합대학원’을 적극 활용해 학생들의 잠재 역량을 키워주고자 한다. 안전환경융합 및 스마트산업안전공학이라는 현재의 두 체계에서 하반기엔 소방방재안전 영역까지 다뤄질 수 있도록 준비 중이다. 

내년도 법 시행을 기점으로 중대재해에 관한 우리 사회의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기대될 앞으로에 있어, 이 교수는 전문가 양성에 힘을 쏟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사진제공=숭실대학교
내년도 법 시행을 기점으로 중대재해에 관한 우리 사회의 좀 더 체계적인 관리가 기대될 앞으로에 있어, 이 교수는 전문가 양성에 힘을 쏟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사진제공=숭실대학교

 

숭실대 안전보건융합공학과 이준원 교수는···       

이준원 교수는 국내 산업안전보건 정책 및 사업 개발 분야 대표 전문가로 꼽힌다. 1988년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에 입사해 32년간 근무하면서 책임연구원, 국제협력팀장, 전문기술총괄실장을 거쳐 지역본부장까지 두루 역임했다. 국가기술표준원 실무위원회 위원과 한국중부발전 안전관리위원회 전문위원을 포함, 미국화재방지협회(NEPA) 회원으로도 현재까지 폭넓게 활동해오고 있다. 사업장의 위험성을 평가하는 지표를 설계해왔으며 특히 1999년도에 사업장 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제도인 KOSHA 18001 제도를 만든 것은 대표 성과다. 지난해 7월부턴 숭실대학교로 자리를 옮겨 안전융합대학원에서 후학을 양성 중이다.  

저작권자 © 환경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